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영풍함 사건 (문단 편집) === 백아담으로 탈출 === 장주요새가 함락되자 쑨원은 영국 조계지 인근의 백아담 쪽으로 탈출을 기도했다. 천중밍이 영국 조계지까지 추격할 수는 없다는 점을 노린 것이었다. 함장은 백아담으로 가는 지형이 반군에게 유리하고 반군이 대포도 많기 때문에 불리하다고 반대했으나 쑨원은 죽을 곳을 찾아야 살길이 열리는 법도 있다면서 백아담으로의 탈출을 강행했다. 7월 10일 함대가 출항했다. 오전 2시, 영풍, 초예, 예장, 광옥, 보벽 등의 군함들에게 해심강에서 삼산강 나루로 이동하라는 명령이 내려졌고 새벽에 차왜포대의 천중밍 부대에 발포하라고 지시했다. 천중밍 부대 역시 즉각 응사했고 격렬한 포격전이 벌어졌다. 함대는 차왜포대의 많은 대포를 보고 전진하지도 퇴각하지도 못하고 우왕좌왕했다. 쑨원은 "민국의 존망이 이 일전에 있다. 오늘의 싸움은 오직 전진이 있을 뿐이고, 후퇴는 일보도 용서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9시 30분에 기함인 영풍을 전진시켰다. 포대 뿐만 아니라 강 양쪽 기슭에 포병 2개 대대가 배치되어 함대에 포화를 퍼부었지만 20분 간의 항해 끝에 함대는 백아담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영풍함만 해도 6발의 포탄을 맞았으며 후속함대도 하나같이 피해를 입었다. 백아담에 도착하자 영국 해관세무사가 나타나서 백아담에 정박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 장개석비록은 이것이 천중밍의 사주라고 주장하는데 사실 조계지 입장에서는 중국의 내전에 휘말리고 싶지 않은 것이 정상일 것이다.] 이에 쑨원이 분노해서 외쳤다. >"백아담은 중국의 영토이고, 나는 중국혁명의 지도자이다. 나는 중국에서 행동할 자유가 있고, 내가 군함을 정박시키고자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정박시킬 권리가 있다. 그런데 왜 내가 그대의 간섭을 받겠는가. 나는 온몸이 담력으로 뭉쳐 있다. 천하에 나를 협박할 자가 있을 줄 아느냐!" 이에 영국 해관세무사는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백아담에 정박한 후에도 고난은 계속되었다. 식수와 식량이 부족하였으며 무더운 더위가 병사들을 괴롭혔다. 유일한 희망인 쉬충즈의 북벌군도 7월 26일 소관전투에서 패해 남웅으로 퇴각했고 천중밍을 따르지 않는 광동군 제2군도 광서 방면으로 퇴각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